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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에 왜 젊은이들만 총알받이 되는가
"덩케르크"는 2017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영화로,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이루어진 제2차 세계대전 중 덩케르크 대피 작전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육지, 바다, 하늘의 세 가지 관점으로 나뉘어 전달되며, 각각의 관점은 독일군에게 포위된 프랑스 덩케르크 해변에서 338,000명의 영국, 프랑스, 벨기에 병사들을 구조하는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섬세하게 연결됩니다.
육지 - 1주일:
육지의 이야기인 "The Mole"은 1주일 동안의 사건을 다룹니다. 이는 젊은 영국 병사 토미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독일군의 습격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토미는 덩케르크 해변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이미 사망한 동료를 매장하는 병사 기븐슨을 만납니다. 다친 병사의 구급침대를 이용하여 병원선에 탑승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후, 그들은 또 다른 영국 병사 알렉스를 만나고, 세 사람은 물이 불어오기를 기다리며 트롤러 안에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동안 독일군이 보트를 표적 연습으로 사용하여 물이 새기 시작합니다. 기븐슨은 자신이 프랑스인이라고 밝히고, 덩케르크에서 탈출하기 위해 죽은 병사의 신분을 훔쳤다고 고백합니다. 물이 차오르면서 배가 더 빨리 가라앉기 시작하고, 남자들은 기븐슨을 스파이로 몰아, 배가 가라앉는 원인이 됐다고 비난합니다. 그들이 구멍을 막고 물을 퍼내려고 시도하는 동안, 기븐슨은 사슬에 걸려 물에 빠져 익사합니다.
바다 - 1일:
바다의 이야기인 "The Sea"는 하루 동안의 사건을 다룹니다. 이는 항해자인미스터 도슨, 그의 아들 피터, 그리고 젊은 항해사 조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시민 보트인 '문스톤'을 이끌고 덩케르크 대피에 돕기 위해 항해하며, 이는 왕립 해군이 요청한 시민 선박대의 일부입니다. 그들은 갈 곳이 없어 패닉에 빠진 병사를 가라앉은 배에서 구조하지만, 배가 덩케르크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황에 빠진 그 병사가 사고를 일으키면서 조지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됩니다. 그의 부상은 결국 사망으로 이어집니다.
공중 - 1시간:
공중에서의 이야기인 "The Air"는 1시간 동안의 사건을 다룹니다. 이는 로열 에어 포스 스피트파이어 파일럿인 파리어와 콜린스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들의 임무는 대피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콜린스는 총격을 받고 추락하지만 도슨의 보트에 의해 구조되며, 반면에 파리어는 임무를 계속합니다. 그는 여러 독일 전투기를 격추하지만, 결국 연료가 바닥납니다. 그는 덩케르크 해변 위로 비행기를 날린 뒤 착륙하고, 그것이 포획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비행기에 불을 지르고 독일군에게 포획됩니다.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전개되며 여러 타임라인이 여러 차례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영화는 토미와 알렉스가 기차로 덩케르크를 무사히 떠나는 것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들이 영국에 도착하면, 토미는 신문에서 처칠의 1940년 6월 4일 하원 연설문("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다")을 읽습니다.
"덩케르크"는 생존, 연대, 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영웅주의에 대한 영화입니다. 그것의 비선형적인 스토리텔링과 기술적인 탁월성, 음악 점수, 시각 효과, 사운드 디자인을 포함하여, 깊이 있는 몰입감을 제공하는 관람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 영화는 비평가들과 상업적으로 모두에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역사적으로 바라본 덩케르트
덩케르크 대피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히며, 이 작전은 "불가능한 작전(Operation Dynamo)"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 작전의 배경은 1940년 5월, 독일군이 서방 정면을 공격하며 프랑스를 빠르게 점령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때 영국군과 일부 프랑스 군대는 북부 프랑스의 작은 해안 도시 덩케르크에 까지 밀려났습니다.
덩케르크에서 이들 군대는 해변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받으면서 해상으로 철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영국 해군은 물론이고 많은 민간인 선박들이 이 작전에 참여했고, 이들은 독일 항공군의 폭격과 독일 육군의 접근에도 불구하고 9일 동안에 걸쳐 338,000명이 넘는 군인들을 구조했습니다.
덩케르크 대피는 결국 영국과 그의 동맹국들에게 시간을 벌어줘 독일에 대항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비록 이는 큰 퇴각이었지만, 이는 많은 군인들을 구조하여 결국 영국이 대전에서 회복하고 반격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덩케르크 대피는 영국인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며, "덩케르크 정신"이라는 용어는 당면한 어려움에 맞서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을 상징합니다. 이 작전은 영국의 결연한 저항을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지며, 전쟁의 역사를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한국의 함흥 철수
"덩케르크 대피"와 "함흥 철수"는 각각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중에 발생한 대규모 군사 철수 작전입니다. 두 사건 모두 군사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두 작전은 적군에게 포위되어 고립된 상황에서 병력을 안전하게 철수시키기 위해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경, 실행, 그리고 결과는 매우 다릅니다.
"함흥 철수"는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발생한 대규모 철수 작전으로, 이 작전은 북한의 함흥에서 연합군이 중국과 북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뒤 진행되었습니다.
1950년 11월, 중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면서 전략적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중국군은 북위 39도선에서 강력한 반격을 시작하여 연합군을 퇴각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연합군은 함흥을 포함한 여러 전선에서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함흥 철수는 1950년 12월에 시작되어 같은 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철수 작전에서는 약 105,000명의 군인과 91,000명의 민간인, 그리고 17,500대의 군사 차량이 함흥에서 원산을 거쳐 부산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작전은 '크리스마스 카고 작전(Operation Christmas Cargo)' 또는 '헝그넘 작전(Operation Hungnam)'이라고도 불리며, 이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루어진 대규모 철수 작전을 의미합니다.
이 철수 작전 중에 연합군은 함흥에서 다량의 물자를 폐기하거나 파괴했으며, 이는 공항, 기차역, 그리고 창고를 파괴하거나 불태우는 것을 포함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적군이 이들 물자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함흥 철수는 전쟁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여겨지며, 이는 전략적 위치에 있던 함흥을 잃게 되면서 연합군의 전선이 38도선 근처로 다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한국전쟁이 장기화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